연극

2019.06.26, 27, 28

연극 <Harry Potter and the Cursed Child: Part one and two>



러닝타임 2시간 30분 + 2시간 40분

해리 포터의 둘째 아들 알버스 포터와 드레이코 말포이의 아들 스콜피우스 말포이의 시간여행
원작의 이야기가 끝나고 22년 후, 알버스 포터는 긴장한 채 호그와트에 입학한다. 해리 포터와 지니 위즐리의 아들이라는 기대 속에서 그는 부담감을 느낀다. 슬리데린에 배정받은 후 본인이 쓸모없다고 느끼는 알버스는 '볼드모트의 아들'이라는 루머에 시달리는 스콜피우스 말포이와 친해진다. 
어느 날 케드릭 고드리의 아버지 에이머스가 해리포터를 찾아와 그 때문에 자신의 아들이 죽었다고 해리를 비난한다. 그는 마법부가 가지고 있는 타임터너로 케드릭을 되살리라고 요구하나 해리는 거절한다. 이 대화를 몰래 듣고 있던 알버스는 스콜피우스와 케드릭의 사촌 델피와 시간여행을 감행한다. 




원작에서 알버스 포터는 유일하게 해리의 자식 중 그의 녹색 눈을 이어받은 아이로 묘사된다. 원작 에필로그는 그가 11살이 되어 호그와트행 열차를 타는 장면으로 끝난다. 연극의 내용은 바로 이 장면 직후부터 시작된다.  
무려 5시간 동안의 러닝타임을 차지하면서 2세대의 모험과 성장담, 1세대의 관계성 그리고 시간여행까지 겹쳐져서 플롯이 다소 복잡한 편이다. 전반적으로 '마법'을 구현하기 위해 상당수의 무대 장치를 활용하고 있다. 


첫 시작은 9와 3/4 승강장. 의인화된 마법 모자가 나타난다. 그의 손짓에 사람들은 움직이고 방향을 바꾸는데, 이로써 마법을 분명히 보여준다. 


승강장과 열차는 캐리어들로 표현되며 이를 이루는 동선이 매우 매혹적이다. 중간중간 캐리어를 끄는 액팅이 군무로 펼쳐지니 전환 그 자체가 매우 중요한 연출이 된다. 이후에도 전환은 극 내내 중요한 연출로 활용되는데, 호그와트 교복을 입은 채 등장하는 전환수들이 1) 검은 망토를 휘둘러 2) 무대 장치들을 덮은 채 전환을 진행하기 때문이다. 펄럭이는 검은 망토와 감춰지는 대-소도구들은 마법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하다. 


이야기의 중요한 한 축은 '아빠'로서의 해리가 느끼는 내외적인 갈등들이다. 해리는 자신이 아빠를 가져본 적이 없기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 헷갈린다고 솔직하게 털어놓고 그의 아들을 과보호 하기도한다. 이 관계성이 사건을 전개하는 주요 요소가 된다. 따라서 이야기의 초점은 알버스와 해리 사이를 오갈 수밖에 없다.

원작의 팬이라면 1세대의 이야기가 반가울 수 있지만, 작품 내적으로는 번잡한 감이 없지 않았다. 
시간 여행을 세 번이나 하면서 벌어지는 알버스와 스콜피우스의 우당탕탕 청소년 모험만으로도 충분하니, 1세대의 이야기는 사족으로 느껴진다. 결말 부분에서는 이 모험담의 마무리도 어설퍼지는데, 알버스와 스콜피우스가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들이 개입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이야기의 긴장감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결국 델피 대 알버스와 스콜피우스의 대결이 아니라 델피-볼드모트 대 해리포터와 친구들로 연결되는 대결은 원작의 싸움을 소급하기만 한다. 이는 새로운 악을 상상하지 못한 채 볼드모트의 자식을 끊임없이 소환한 탓이다. 원작과 어긋나는 인상 역시 감출 수 없다. (볼드모트와 벨라트릭스의 자녀라니?) 

알버스는 해리와 같이 평소엔 소심하지만, 결단력 있는 차분한 성격이다. 그는 자칫 밋밋할 수 있으나 보편적인 인물로 묘사되어 그를 둘러싼 설정에 더욱 집중할 수 있게 한다. 스콜피우스는 부끄럼을 잘 타고 책을 좋아하는 괴짜로 나오는데, 배우의 허스키하고 높은 목소리와 잘 어울린다. 그는 단순히 론이 원작에서 맡았던 역할을 넘어서 해리가 죽어 알버스가 존재하지 않는 세계에서는 주인공으로 활약하기도 한다. 


대극장에 두 인물만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적지 않은데, 호그와트의 움직이는 계단이나 호수를 표현하는 어항 등의 대도구 활용이 뛰어나 무대가 비어 보이는 장면은 없다. 특히나 해리가 알버스로 하여금 스콜피우스와 멀어지라고 한 후 알버스가 스콜피우스를 피해 다니는 장면의 계단 동선은 매우 아름답다. 끊임없기 교차하고 어긋나면서 인물의 심리를 부각하기 때문이다. 


무대가 가장 극적으로 활용되는 장면으로는 세 개를 꼽을 수 있다. 알버스와 스콜피우스가 여자 화장실을 통해 호그와트 호수로 가 헤엄을 치는 장면과 디멘터가 등장하는 장면, 그리고 델피의 정체가 밝혀지는 장면이다. 

호수에서 헤엄을 치는 장면은 무대 가장 앞 끝 선에 흰색 반투명 막을 내리고 천장에서 물결 모양의 조명을 쏘는 것으로 표현된다. 배우들이 와이어에 매달려 발을 천천히 휘젓는 연기 역시 장면을 한층 실감 나게 한다. 무엇보다도 이어지는 장면에서 스콜피우스가 무대 바닥에 설치된 실재 수영장에서 나타남으로써 시각적으로 매우 화려하다. 

디멘터가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극장 전체를 날카로운 음향효과가 채우고, 실링에서 총 3개의 거대한 형상이 내려온다. 2m가 넘어 보이는 거대한 이 형상은 흰색 천을 휘날리면서 움직이는데, 그중 하나는 객석 천장에서 내려와 관객과 매우 가깝게 호흡한다. 다만 이 장면에서 연출이 극장별로 로컬라이징이 되어있는지 의문이다. 멜번 The Princess Theatre의 경우 2층 관객석 돌출이 타 극장에 비해 심해서 1층의 뒤쪽 관객들의 시야에는 디멘터가 잘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는 델피의 정체가 밝혀지는 장면. 무대를 넘어서 극장 전체의 벽면과 천장에 써진 글씨가 드러난다. 형광 파란색의 조명과 델피의 머리색이 어우러지며 분위기가 극적으로 차갑게 변한다. 글씨체 역시 돌에 날카로운 칼로 새긴 듯하여 소름 끼치는 효과가 있다.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은 해리와 그 무리가 제임스와 릴리의 집으로 들어가는 볼드모트를 바라만 보고 있는 장면이다. (볼드모트는 실제로 관객석을 지나 극장 밖으로 나간다) 다 알고 있지만 개입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해리는 그의 친구들과 가족들에게 안긴 채 오열하는데, 상당히 비극적이다. 

이처럼 연극은 새로운 이야기를 펼쳐내기보다는 원작 인물들의 관계성의 연속선에 기대고 있다. 알버스와 스콜피우스의 캐릭터가 매력적으로 구축된 것에 비해 방점이 지나치게 해리에 찍혀있는 것이 아쉽다. 특히나 결국은 사건의 해결에 2세대가 아니라 해리가 주축이 되는 것은 성장담으로서 매력 있는 이야기가 될 수 없다. 다만 연극 무대 위에서 마법을 구현하기 위해 다양한 대-소도구와 액팅을 추가한 것이 흥미로워 긴 러닝타임이 지루하지 않았다. 


p.s. 1 스네이프 역의 배우가 하는 알란 릭맨의 성대모사가 깨알이다. 
p.s. 2 여타 인물들이 영화 속 묘사를 따라하고자 애쓴 것과 달리 헤르미온느 역은 아프리카계 여성이 맡았다. 








댓글

가장 많이 본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