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백수광부 <신신당부> 낭독극 리뷰

2019.01.17

극단 백수광부 <신신당부> 낭독극 리뷰 

-<이동>,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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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명 신신당부 (신작 신진예술가 당신에게 부탁해)로 불리는 이 프로젝트는 신진 작가들의 작품을 지원 받아 심사를 통해 작품을 선별-극단 소속 연출가, 배우와 매칭해 낭독극 형태로 무대에 올리는 작업이다. 
올해는 47개의 작품이 지원했고, 그 중 박도영 작가의 <이동>두아인 작가의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라> 그리고 이정우 작가의 <how to shoot>이 선정되어 이틀간 무대에 올랐다. 

장소는 나온씨어터. 혜화동 로터리에 자리한 작은 극장이다. 
약 50~660여명의 관객이 앉을 수 있는 작은 소극장으로 휠체어 접근성이 떨어지나 신진작가들의 작품을 자주 올리고 있다. 

낭독극이라지만 보면대에 대본을 놓고 배우들이 고정된 형식이 아니라 나름의 무대 구성과 배우들의 동선이 짜여진 형태였다. 

17일(목)에는 박도영 작가의 <이동>과 두아인 작가의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라> 두 작품이 10분의 인터미션을 두고 연이어 올랐다. 



박도영 작가의 <이동>
러닝타임 : 약 75분
폐쇄된 열차에 탄 한 마을 출신의 다섯 인물들이 어우러져 각자의 열망과 그에 따른 갈등, 그리고 희망을 담은 작품 

무대 상하수에 검은 막을 사용해 열차의 내외부를 표시하고 빨간 큐브를 좌석으로 사용했으며 중앙에 여러 종의 신발을 쌓아둠으로써 한때 함께 존재했으나 이제는 부재한 인물들을 표현했다. 

폐쇄된 공간에 다섯 명의 인물이 등장해 깊이있고 섬세한 인물 설정과 이에 얽히고 설키는 관계의 양상을 기대했으나, 인물별 사연과 그 관계설정에 차이가 없고 깊이가 얕았다. 

이어지는 전개 속에서 인물간의 갈등이 조금씩 드러났으나 과거의 아픔을 산발적으로 나열하는 정도라 어째서 다섯명의 인물이 열차에 타게 되었는지, 각자 어떤 과거를 갖고 있는지 알아차리거나 구분하기 힘들었다. 

인물 설계가 대동소이하다보니 인물간의 마찰과 이로 인한 사건 전개도 싱거운 편이었다. 

극의 기승전결에 있어서 차등이 없어 전개가 루즈한 편이었는데, 장면 별 찍혀야할 방점이 명확하지 않은 탓이었다. 
일례로 아이를 잃은 두 여성 인물의 아픔이 드러나는 듯 했으나 이내 봉합되고, 다시 조금 불거지나 싶었으나 종결되지 않고 흐지부지 넘어가는 식. 사긴어 넘어가는 지점도 새로운 이야기나 외부의 자극없이 인물들의 의식의 흐름에 맡겨둬버려 관객에게 찝찝함을 남긴 채 극이 진행되었다. 

이러한 단점이 가장 잘 드러나는 부분은 나리가 열차 밖으로 나갈 때다. 인물 별 개성이 없다보니 '나리가 열차를 탈출'한다는 사건에 있어서도 인물별 반응이 유사하다. 
모든 인물들의 감정에 질투와 희망이 섞여있어 각기 인물이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분명하지 않았고, 전반적으로 감정이 고조되기도 전에 다른 감정으로 이어지는 식이라 배우의 연기에 있어서도 호흡이 분절되지 않는다는 인상이 강했다. 

극화하기 좋은 작품이라기 보다는 소설에 어울리는 작품이었으나, 앞서 묘사한 것처럼 무대 구성이 효율적이었으며 프로젝터를 통해 객실 밖의 상황을 드러내고 음향을 통해 무대에 입체감을 주었다. 조명 역시 효율적으로 사용해 서스포 핀 조명을 통해 바깥의 햇살이 들어오는 장면이 잘 구현되었다. 

다만 대본 자체는 목가적이고 사실주의적이었던 반면, 연출 방식은 상당히 모던하고 미니멀리즘적이어서 대본에 적시된 분위기가 잘 살지 않았던 점이 아쉽다. 인물들이 서로 어깨에 올라타 기차 밖을 구경하는 장면과 같은 경우 얼마든지 코믹하게 풀어낼 수 있었지만 액팅이 정리가 안되서 산만하기만 했다. 조명 색감을 따뜻하게 주었어도 인물간의 정이 잘 드러났을텐데 시종일관 푸른 색감의 조명으로 한층 더 분위기가 무겁게 다가와 숨이 막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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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리가 노란색 후드를 입고 햇살을 표현한 조명 아래에 설 땐 빛이 강하게 반사되어 눈이 아팠다. 배우들이 왜 같은 후드를 색깔별로 입었는지는 이해가 되지 않으나, 덕분에 커튼콜에서 기차놀이를 할 때의 귀여움이 배가 되었다. 

두아인 작가의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라>
러닝타임 : 약 35분
형식이 흥미로운 극으로, 취준생인 김마리아가 지하철을 타고 면접 장소에 가는 동안 꿈 속에서 수태고지를 경험하는 작품

앞선 극과 달리 희곡 대본으로서의 강점이 명확한 극이었다. 감각있는 연출 역시 한 몫 했는데, 코러스들의 동선과 적절한 빔 활용,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의 웅장한 타악기 연주가 인상깊었다. 
작가 역시 연출을 해본 경험이 있어서인지 극 초반에 연극적으로 코믹한 (관객들의 호응을 끌어낼 수 있는) 대사를 잘 배치했다. 다만 그 간격이 좁게 몰려있어서인지 극 초반의 호흡을 끊는다는 느낌이 다소 있었다. 

인물에 집중하기 보다는 연극 형식에 집중해 이를 십분 활용했는데, 이로써 여성들이 갖는 보편적 공포를  잘 드러내고 남성중심적 서사의 맹점을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3막 구성조지프 캠벨의 영웅서사구조를 차용했다. 이야기가 전개됨에 따라 종교도, 논리도, 이성도 여성의 삶을 설명하거나 대변해주지 않게됨에 따라 앞서 구축한 극의 형식을 파괴한다. 
연극을 처음 보는 관객의 경우 이를 낯설고 얼핏 산만하다고 느낄 수 있으나, 종교적 모티프와 신화구조가 현 시대에서 무엇과 어떻게 대응하고 변주되는지 재치있게 그렸다. 

성경 속 수태고지와 현재 대한민국의 인공임신중절이라는 현안이 어우러져 마찰을 겪는데, 
히포크라테스의 스승인 아스클레피오스가 김마리에게 '애 아빠는 (인공임신중절 수술)에 동의하느냐'고 묻고 '사실 낙태 시술은 불법이라 배우지 못했다'고 말하는 부분은 여성들이 겪는 난관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해당 장면에서 남성 관객들은 웃는 반면 (작가는 위의 상황을 무겁지 않게 농담조로 표현했다) 여성 관객들은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현재의 인공임신중절을 둘러싼 상황을 압축적으로 드러낸다. 

작가는 영웅이 모험을 마치고 회귀하는 단계를 2호선 외선순환 열차를 통해 표현하는데, 이런 시공간적 장치가 서사구조를 충실히 따랐다는 것 외에 활용되는 지점이 없어서 아쉬웠다. 
구조적인 기능외에도 연출에 따라 얼마든지 더 의미가 담길 수 있는 장치인 만큼, 극이 전반적으로 보다 길어진다면 얼마든지 더 발전 가능하다. 

극이 보다 길어지는 것은 3막 구성의 영웅 서사구조 형식이 이야기가 전개됨에 따라 파괴되는 것을 보다 분명하고 극적으로 보여주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형식이 흥미로운 것에 비해 이를 캐치하고 익숙해질 시간이 관객에게 필요하기 때문이다. 

극의 형식이 파괴되는 것은 관객이 김마리아에게 이입하고 공감하는데에도 매우 중요한 요소인데
기독교도, 그리스 신화도 여성을 외면하는 현실 속에서 김마리아의 세계가 흔들리는 것을 효과적으로 표현해주기 때문이다. 

만약 작가가 대신 할머니로 대표되는 여성의 역사, 여성의 연대를 전달하고 싶다면 요한나와 수산나가 김마리아를 돕는 계기를 상술하는 것 (작가가 앞서 훌륭하게 해낸 것 처럼, 이들의 성서 속 모티프를 따와 보다 입체적인 인물로 그려내는 등)이 도움이 될 것 같다. 

코러스들의 역할이 돋보이는 가운데 라헬은 남성 배우를 쓴 것과 상이하게 요한나와 수산나는 여성 배우가 연기한다.  여성 배우가 분한 요한나와 수산나가 극의 경계를 넘나들다가 하나의 인물로 분해 극 내용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순간은 코러스들의 성차를 명확히 보여주며 극 내용이 클라이맥스로 치닫는 장면이기에 보다 상세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올해 <신신당부> 프로젝트에 선정된 작품들의 성격은 매우 상이했는데, 덕분에 극단 백수광부가 다양한 작품들을 눈여겨 보고 새로운 시도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인상이 강했다. 해당 프로젝트는 여타의 상금이 없는 대신 신진 작가들에게 자신의 작품을 극화할 최선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육성 프로젝트로서 가치가 높다. 앞으로도 <신신당부>는 신선한 작품들을 폭 넓게 소개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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